: 울산 중구에 있는 '한국전쟁 민간인희생자 위령탑 '은 왜 세워졌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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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중구에 있는 '한국전쟁 민간인희생자 위령탑 '은 왜 세워졌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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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민간인희생자 위령탑을 아시나요? 

위치 - 울산 중구 약사동 936

 

지나다니시면서 왜 세워졌는지? 뭐하는곳인지? 궁금했던분들이 있을겁니다. 저도 지나가면서 봤는데 한국전쟁 위령탑이라고 하길래 6.25전쟁 위령탑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만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면 억울한 희생자들의 위령탑입니다.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한국전쟁 시 민간인 희생자 기념탑은 한국전쟁(1950-1953) 중에 목숨을 잃은 민간인들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조형물입니다. 

 

한국 전역에 건립된 민간인 희생자 기념탑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서울 용산구의 국립서울현충원 내에 위치한 6.25전쟁 민간인 희생자 기념탑이 있는데 울산 중구에도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탑이 지난 2021년에 세워졌습니다.

 

지난 70년간, 울산 지역에서는 국민보도연맹 사건으로 수많은 민간인들이 희생되었고, 그들의 유가족들은 깊은 상처와 고통을 겪으며 어려운 삶을 살아오셨습니다.

 

지금 우리는 그들의 희생의 의미를 기리고 유가족들의 아픔을 위로하며, 더 나아가 이 같은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함월산 자락에 위령탑이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이 위령탑은 우리 사회가 평화와 인권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고, 국민들의 화합을 도모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장소가 되었으면 합니다. 

 

울산시 민간인 희생 사건이란?

대한민국은 1945년 8월 15일 일제 강점기가 끝나 광복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광복의 기쁨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우리들이 잘 아는 6.25전쟁때문이죠. 

 

조상들이 흘린 피로 되찾은 조국은 38선을 경계로 나누어졌으며 동족끼리 총을 겨눈 한국전쟁의 상처는 우리 민족에게 지울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특히, 동족상잔의 소용돌이에서 민간인들의 희생이 많았습니다. 울산에서는 국민보도연맹 가입자나 예비검속 대상이었던 870여 명이 1950년 8월 5일부터 8월 26일 사이 10여 차례에 걸쳐 온양면 대운산 골짜기와 청량면 반정고개로 이송되어 집단 총살되었습니다.

그 중 412명은 나중에 국가의 조사로 확인되었습니다. 경찰의 의심과 육군 방첩부대의 두려움으로 인해 국군이 후퇴할 경우 인민군에 동조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이 참혹한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희생자 대부분은 20-30대 청년 남성으로, 좌익 사상과 무관하게 농업에 종사하던 민간인이었죠. 유족들은 사회적으로 멸시를 받으며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1960년 8월 22일 유해를 수습해 합천산 백양사 근처에 한동문묘를 만들고 비문도 세워졌습니다.

시간이 흘러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1950년 울산 민간인 학살이 불법 행위라고 결정했습니다. 2008년 1월 24일, 노무현 대통령은 국가의 불법행위에 대해 울산시민과 유가족에게 사과했으며 2012년 대법원은 국가가 그 불법행위의 책임을 지고 배상하라는 항소심 판결이 확정이 되었습니다. 

 

비석에는 희생자들의 명단이 빼곡히 세겨져 있습니다. 

800여명 중 400여명이 확인이 되었는데 이름조차 없는 사람들도 조사를 통해 발견이 되었으면 합니다. 

 

위령탑은 고깔과 장삼을 걸치고 두 개의 북채를 쥐고 춤추는 민속춤 승무를 형상화해 상처와 이별의 아픔을 이겨내고 날아가는 영혼의 날갯짓을 표현되었습니다. 

또 두 마리의 비둘기가 각각 ‘진실’과 ‘화해’라는 글자가 각자된 올리브 가지 잎을 물고 마주 보는 모습은 평화를 상징합니다. 

 

지나가면서 한국전쟁 민간인희생자 위령탑이 세워진것을 보고 어떤곳인지.

왜 세워졌는지. 몰랐던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셨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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